한산한 시골마을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목사님이었고, 어머니는 비구니인 이상한 집안에서 소중하고 작은 외아들로. 뒷산을 오르면 울창한 숲과 절이 있었고, 어영부영 포장된 아스팔트길을 따라 마을 중심가로 가면 교회가 있었다.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나가면 한 잔에 천원하는 오렌지 주스를 꼭 하나씩 쥐여주셨는데, 그게 그렇게나 맛있었더랜다. 록산은 서울로 상경하고서도 종종 오렌지 주스를 사 마셨지만, 그 때만큼 달고 시원한 건 다시 마실 수가 없었다. 소중한 기억 중에 하나라 나름대로 보정이 된 것인지, 길거리 수레 가게 아주머니가 무슨 수작을 부린건지는 몰라도 록산은 여전히 오렌지 주스를 좋아한다. 아무튼 록산은 산골짜기 좁은 골목길을 사이를 노니며 자랐다. 어떤 원자처럼 공기 중에 퍼져있는 평화만으로 특별하다 여겨질만한,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어린시절을 록산은 겪었다. 숨을 크게 들이켰을 때 폐부를 가득 채우는 안정감은 분명 록산이 고목처럼 생기롭고 단단한 사람으로 자라는 데에 도움을 줬다. 록산은 깡촌이라 불릴 만한 시골에서 왔다는 사실을 숨기려 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굳이 알리지도 않았다. 유대에 있어 자라난 배경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설령 흉흉한 뒷골목에서 살아온 사람이라도 스스로를 잘 안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록산에게 있어 그가 자란 마을은 풀잎사귀가 산뜻하고 볕이 잔잔한, 그리고 여전히 다정한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고향일 뿐이었다.
사랑을 했다. 대학교에 갓 입학한 스물이었다. 먼 고향에서 서울을 매일마다 오갈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록산은 도시 외곽의 달동네에 작은 방을 잡았다. 거기에 룸메이트가 있었다. 록산은 여전히 그를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부시시한 곱슬머리에, 노란 옷을 좋아했고, 비가 오는 목요일에는 싱그러운 꽃 한다발을 사서 가장 예쁜 유리병에 꽂아 식탁 위에 두었던 사람. 꽃집 옆에 카페를 열고 싶다던 사람. 록산을 록사나, 라고 발음하던 사람. 록산은 그의 섬세함을 좋아했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꽤 잘 맞는다는 사실을 깨달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음 학기 시간표를 맞춰보며 밥 먹을 시간을 챙기고, 좋은 것을 보면 상대를 떠올렸으며, 주말에 함께하지 못하면 아쉬워했지만 연인이라 정의할 수는 없는, 이상야릇한 관계에서 그들은 쉽게 살았다. 1년 하고도 반이었다. 실실 웃으면서 수술 날짜와 나 너하고 더 못 지내겠다는 말을 성급히 전하던 얼굴은 농담보다도 지독해서 록산은 울기보다는 그를 따라 마냥 웃고 말았다. 겨우 무슨 일이냐 묻는 말에는 하도 잘 웃고 다녔더니 폐에 바람이 들었댄다. 기도에 구멍이 나서 수술을 해야하는데, 사망률이 무슨 동전뒤집기도 아니고 50퍼센트랜다. 허, 참. 록산은 허탈히 웃기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는 천천히 록산의 자리를 거둬들였다. 제 방보다 작은 병실에 누워 고요히 죽어가는 그는 겨울바람보다 서늘하면서 달빛만큼 따사로웠다. 록산은 그의 손을 쥐고 이대로 사라지지 말아, 하며 내일을 기약했지만, 결국에 록산은 그의 마지막을 지켜보지도 못했다. 록산은 어디까지나 타인이었고 그들의 관계는 수면 아래에서 이뤄지는 물고기들의 입맞춤에 불과했기에, 록산은 친구의 이름으로 그의 장례식에나 겨우 다녀오는 게 고작이었다. 그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날, 록산은 생에 처음으로 슬픔이 온 몸에 들어차는 감각과 함께 무력함을 느꼈다. 억수같이 울며 지새운 밤이 꼬박 이틀을 넘었다.
록산은 혼자서 바다로 향했다. 록산에게 있어 바다에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왜. 소설에 보면 실연을 당하거나 극심한 슬픔에 빠진 주인공이 찾는 곳은 흔히 바다가 아니던가. 록산은 이를 바이블 삼아 따랐다. 그럼 여기서 문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뻔하디 뻔한 배낭여행까지 떠난 록산을 다시 일으킬 결정적 사건은 무엇이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정답은 또 다른 이의 죽음이었다. 바닷바람이 시려웠던 날을 통하고, 다음 날 아침에 낡아빠진 숙소방 앞이 소란스러워 퉁퉁 부은 눈으로 나가보니 앞 호실에 묵은 사람이 밤 사이에 자살을 했더란다. 들어보니 빚에 목이 매어, 범죄에 연루되어, 말이 많았다. 하지만 그가 죽은 이유는 록산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관심있는 것은 일면식도 없는 이의 죽음이 나지막하고 뜬금없이 록산의 삶에 들어왔다는 사실이었다. 그게 또 서러워 록산은 부서질듯한 파도 위의 단단한 바위 옆에서 한참을 서있었다. 그 곳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뉴스마다 나오는 실종, 자살, 폭행, 살인 소식들을 떠올렸다. 이미 많은 이가 저 거센 파도에 휩쓸려간 슬픈 해였다. 록산은 계속해서 나아가는 대신, 그 자리에 주저앉아 펑펑 울고만 싶었다. 록산은 그렇게 했다. 그가 슬픔에 휩쌓인 스스로를 어줍잖게 위로하지 않은 것은 죽은 이들에 대한 존중이자, 가장 적극적인 형태로 세계를 소화시키는 작업이었다.
그게 전부였다. 록산은 다시 괜찮아졌고, 이후로는 나쁘지 않은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러다 스물둘을 넘겼던 어느날, 그는 칼에 찔렸다. 그것도 무려 훤한 대낮에! 쏟아지는 피는 검붉었고, 찢어진 옆구리는 상상보다 아프지 않았다는 것이 록산이 기억하는 전부였다. 대학 병원의 천장 밑에서 눈을 뜬 그는 멀그러니 끔벅이다 이렇게 말했다. 더 다친 사람은 없어요? 저릿한 제 허리춤을 갈무리하지 않고, 남부터 걱정하는 게 어지간한 정신으로 할 생각인지는, 굳이 따지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마침 챙겨들고 있었던 등록금과 지갑의 현금마저 잃어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자신이 당한 것이 오히려 다행이지 않느냐며 록산은 웃었다. 애초에 록산은 물질적인 것에 연연하는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다만 그 날은 록산에게 있어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것이 평등하다는 사실이 다시금 다가온 순간이었다.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바라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이뤄지겠지만, 죽어서는 시도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앞서 떠나간 이들을 보라. 깜박거리는 전등마냥 쉽게 사라지는 것이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라는 것이 있다면. 소망을 물려받을 수 있다면. 드물게 시야에 드는 건물 사이에서 회의를 느낀 록산은 그 길로 록산은 대학을 자퇴했다. 그렇게 시시콜콜한 아르바이트 자리들을 전전하다 3년만에 차린 것이 ‘하예라’. 그의 꽃집이다.